첫 만남, 홍대 클럽에서 마주한 은빛 장벽


2009년 12월, 나는 IVF Media가 기획한 <에라데이> 콘서트 무대 위에 서 있었다. 그날 가장 인기가 좋았던 나의 자작곡은 ‘재건축하려고 우리를 쫓아냈지만, 원래 아줌마 집이니 저희는 괜찮아요.’라는 자조 섞인 가사를 담은 <하숙집 아줌마>. 내가 신나게 무대에서 내려 왔을 때쯤,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어느 아랍여성의 모국 이야기로 클럽 안은 숙연해지고 있었다. 우리의 공통점이 있다면 땅을 잃었다는 것.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그저 더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하는 하숙집을 구하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스크린에 비친 그녀의 나라 ‘팔레스타인’에는 정체 모를 은빛 장벽들이 빼곡했다. 스물 넷, 그것이 나와 팔레스타인의 첫 만남이었다.

“Save Gaza, 우리 함께 가자”


14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가자지구 공습(2009년 1월) 이후로 간헐적으로 이어져 오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2012년 11월. 또 다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2012년 가자 사태의 팔레스타인 사상자는 1,000여 명이었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은 민간인이었다. 또 사망자 162명에는 어린이가 37명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망자는 5명이었다.
굳이 국제인권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전시에 아무 저항을 할 수 없는 민간인을 죽이는 것은 명백한 전쟁범죄로 분류된다. 우리는 정의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는 없어도 불의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내 곁에는 같이 울어주던 친구들이 있었다. 공습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Save Gaza, 우리 함께 가자>라는 제목 아래 울산과 서울에서 두 차례 콘서트를 가졌다. 재능, 장소, 돈을 모아 준 친구들 100여 명을 만나 기대보다 많은 돈이 모였고, 우리는 가자YMCA와 연결되어 있는 한국YMCA에 기금을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대안 성지순례,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속살을 보다

그 때 내 역할은 모두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뜨거운 올 여름 햇살아래 나는 베들레헴 분리장벽을, 예루살렘-베들레헴 체크포인트를, 아이다 난민촌을, 헤브론 스트리트를, 나블러스 시내와 라말라 자치 정부 청사를, 예루살렘 성지를, 올리브 나무 묘목을 심는 농장들을, 갈릴리 호수를 걷고 있는 게 아닌가. 8m 높이의 분리장벽 앞에서 전통음식 팔라펠을 파는 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장벽에 그려진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용직 노동을 하기 위해 이스라엘 검문소를 통과하려 2시간도 넘게 줄을 서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서 검문을 당해보기도 했다. 부재지주의 땅을 몰수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소유의 땅에 있던 60만 여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베어버렸는데, 그들에게 저항하는 방법으로 조그마한 어린 묘목을 심고, 심고, 또 심는 JAI(동예루살렘 YMCA/YWCA)의 Nidal과 친구들을 만났을 때는 21세기 중동판 ‘간디의 물레’아닌가 하는 생각에 입이 떡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 사람이 있다!”

난민촌을 걸을 때 아이들이 터뜨린 폭죽 소리가 포화 소리인 줄 알고 호들갑을 떨어 심지어 곁에 있던 난민들을 웃게 했던 여행 첫째 날이 기억난다. 주요 언론사의 뉴스화면 그리고 수뇌부 정치인들의 정책에만 노출되어 있던 나는 그렇게 조금은 겁먹은 채 여행을 시작했었다. 그러나 2주간의 여행이 끝나갈 무렵, 결혼식 행사 때문에 또 동네에 폭죽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꿈쩍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동행한 이가 물었다. ‘이제 아무렇지도 않느냐’고. 나는 이제 팔레스타인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처럼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더 나은 미래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덮어줄 수가 없게 되었다. 땅을 불법적으로 점령해 130만 명의 팔레스타인의 인구 중 75만 명을 난민으로 만든 것(1950년 기준 통계, 현재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난민은 60년 동안 자연 증가해 세계 난민 전체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분리장벽을 세워 이동의 자유권, 의료권, 교육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 체크 포인트의 검문을 통해 동등한 인간의 존엄성에 위협을 가하며 수치심으로 길들이는 것. 그리고 온당한 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새벽에 기습적으로 가택에 침입해 어린이들을 체포하고 고문해 인권을 유린하는 것, 수도와 전기 등 모든 사회기반 시설을 독점하며 경제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



한국YMCA와 팔레스타인

100여 년 전, 지정학적인 국제정치질서 아래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며 수난을 겪어야 했던 일제 식민지의 경험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 과거의 고난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한반도 허리를 가르는 ‘분단선’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분리장벽’ 앞에서 우리는 또다시 공명하게 된다.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모든 원수들의 막힌 담을 허물고자 하시는 예수(에베소서 2:14)는 그 벽들 앞에서 오늘도 눈물을 흘리고 계시지 않을까.
올 10월, 한국에서 열리는 제10차 WCC 총회에서 한국YMCA는 “세계에 흩어져있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여, 고통 아래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시오.”라 요청했던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그룹과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 지도자들과 함께 한국ATG(대안 성지여행그룹) 창립예배를 드리려 한다. 한국YMCA의 중심인물이 되었던 청년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민족의 자주독립과 민권을 위해 앞장섰던 운동가들이었다.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와 기회가 있다. 또 소외받고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함으로써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잇는 평화운동의 가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성지라 불리는 그 지역을 탐하는 이들의 확장, 정복 중심의 제국주의적 신앙관을 타산지석 삼아 한국교회가 생명과 평화의 신학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준엄한 예수의 계명들은 계명을 지키는 자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아랍 친구들을 기억하며


빛 아래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다. 나치 하에서 자신들이 받은 고통을 그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행하며, 자신들의 땅을 지키려 처절히 악한 행동을 하는 이스라엘이 안타깝다. 이스라엘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초라한 무기로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도 슬프다. 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면, 내가 만났던 용감하고 진실한 친구들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지역의 갈등과 한반도의 갈등이 모두 해결될 수 없을지라도, 나는 살아있는 동안 두 지역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일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곳에서 만난 나의 아름다운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내게 큰 영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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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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