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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 생명평화센터 고문, 김용복 박사] 우리는 왜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에 관심하는가?

우리는 왜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에 관심하는가? 
- 우리는 왜 팔레스타인 민족의 염원인 자결과 독립과 평화를 생각하게 되는가? 



김용복박사 
한국YMCA 생명평화센터 고문 
아세아태평양대학원대학교 원장 
  
역사적 배경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1948년에 팔레스타인지역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서방제국의 지지로 설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문제는 중동 지역에서 영국세력이 크게 후퇴한 가운데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두 강대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으로 이관시켜 국제 문제화시켰다. 결국 유엔은 아랍 측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소련의 동의하에 팔레스타인을 분할하였다. 이 지역 원주민인 팔레스타인 민족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분할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됨으로써 양 민족 간의 생존권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뿐만 아니라 주변 아랍 민족과 유대 민족 간의 끊임없는 대립을 야기했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그에 대한 아랍 국가들의 강경한 저항으로 촉발된 팔레스타인 분쟁은 민족, 영토, 종교, 분리 독립, 식민유산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구체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민족은 자결권과 국가설립과 존립을 위하여 투쟁하고 있다. 

더구나 1967년 6일 전쟁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고 그들을 격리/분리하고 억압하여 왔다. 이는 인티파타저항와 시민학살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또 점령과 격리로 이어져서 팔레스타인민족은 극심한 고통과 수난을 오늘도 격게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은 2002년 6월부터 서안지구 안 팔레스타인인 거주 지역을 둘러싸는 고립장벽(인종차별장벽 또는 분리장벽)을 쌓고 있다. 약 700km의 계획을 가지고 있는 장벽이 완성되면 서안지구의 58%의 땅(약 3,400㎢)이 또다시 이스라엘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최고 8m에 이르는 고립장벽(콘크리트와 철조망의 두 종류) 곳곳에 초소를 설치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을 통제하고, 몇 개의 출입문만을 만들어 외부와 고립시키게 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은 줄기차게 진행되고 있다. 1974년 Palestine National Council은  팔레스타인 국가건설과 관련된 10개의 정치 강령 채택하고 이런 운동은 UN,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을 확인하는 결의안 3236 채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1993년 오슬로 협약에서 98년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합의했으나,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국가의 건설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국제 여론과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용인한다고 하면서도 계속 팔레스타인 민족의 요구는 수용되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상황은 식민지적 점령, 시민저항운동, 저항자의 토옥, 학살, 저항지역의 분리와 격리, 통행의 철저한 제약과 감시등으로 민족의 수난은 극치에 달하고 억압은 통철같이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해방과 독립운동은 지속되고 있다. 

우리 민족과 팔레스타인 민족 

우리는 팔레스타인민족의 독립과 평화운동에서 우리민족이 일제하에서 당했던 수난과 독립운동의 경험을 상기하게 된다. 또 우리 민족은 그들과 같이 강대국들의 분리분단정책과 지배권 경쟁으로 인한 민족의 희생과 분쟁의 지속과 평화의 파괴를 똑같이 경험하였다. 팔레스타인 민족의 독립과 평화는 우리의 우리민족의 자주성과 평화통일운동과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들의 독립과 평화는 곧 우리의 것이다. 동시에 중동의 지정학적 궤도와 동북아의 지정학적 궤도는 유사하고 서로 연계되어 있다. 중동의 평화와 동북아의 평화는 서로 연계되어 있다. 민족의 자결과 독립 없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일수 없다. 

예수의 평화운동 

우리는 기독교신앙을 토대로 하여 예수의 평화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신앙의 발생지에서 정의와 평화는 이루지지 않고 억압과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종교적 분쟁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는 예수의 운동의 발상지에서 왜 평화가 이루지지 않고 있는가?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당혹스럽고 의아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예수의 평화운동의 실체를 재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갈릴리 예수의 평화운동은 로마제국에 저항하는 비폭력운동이었고 제국의 권력에 야합한 유대 지도세력에 대한 저항이었다. 오늘 팔레스타인 민족의 저항과 평화운동은 과연 어떤 것일가? 

우리는 예수의 평화운동의 후예로서 팔레스타인 평화운동과 그 뿌리를 같이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신앙적 유대를 촉발 시킨다. 

신학적 의미 

성경은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책임을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오늘 중동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시오니즘의 언어”, “약속의 땅 언어”, “가나안 정복의 언어”, “메시아니즘의 언어”들이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하고 불의와 탄압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2008년 바젤 회의에서는 “약속의 땅에 대한 신학적 성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The Bible must not be utilized to justify oppression or supply simplistic commentary on contemporary events, thus sacralizing the conflict and ignoring its socio-political, economic and historical dimensions. We are called not only to expose manipulations of Scripture that ignore context and complexity, but to offer readings of the text that promote the values of God's kingdom: justice, peace, reconciliation, and forgiveness.”(“성경은 탄압을 정당화하거나 , 분쟁을 신성시하고 사회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역사적 중요성을 무시한 채 지금 시대의 사건에 대해 간단한 설명만 제공하는 것에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사건의 정황과 복잡성을 무시하며 성서를 통한 상황의 조작만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높이는데 정의, 평화, 화해, 용서같은 본문의 기록을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기독교공동체와 성경학과 신학적 대화를 필요를 느낀다. 이를 통하여 팔레스타인 해방신학, 평화신학의 실체를 배울 수 있다. 또 우리의 생명평화신학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Palestine-Israel Ecumenical Forum on Peace and Self-determination> 

2007년 WCC는 중동의 기독교 파트너(Church Related Organizations=CRO)함께 기독교 평화 에큐메니칼 포럼을 창설하였다. 거기서 나온 선언이 유명한 The Amman Call이다. 이 포럼은 중동의 모든 기독교공동체들을 총망라한 것이었으며 세계기독교 공동체와 단체들의 폭넓은 참여에 의하여 이루어 졌다. 특히 중동 YMCA, YWCA와 같은 기독교 단체들의 역할은 두드러졌다. 이 포럼은 우리 YMCA가 한-팔 평화운동의 연대를 전개하는 데 유용한 틀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암만 평화선언>을 소개한다.(첨부파일 참고)